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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형서시인 / [우정의 보랏빛 야생화1. 2 ] [난, 너에게 우정으로 남고 싶다]

박형서 2018. 12. 6. 12:08





우정의 보랏빛 야생화 1.2


글 / 박 형 서


1.

한 때는 쇼팽의 환상곡을 껴안고서

감상의 뒤안길에 홀로 머물렀지만

외로움의 끝 지점, 아득한 그 곳에서

바람이 불어와, 나를 흔들어 깨운다


첼로의 저음으로 스며든 선율 속에

이름 모를 야생화는 홀로 피어나고

들꽃이 두팔 벌려 누군가를 부를 때

우정이란 이름으로 네가 다가왔다

 

어디론가 떠나간 지인들의 발자국,

뒷모습의 흔적만 바라보고 살았는데

갈대숲에 숨겨진 초겨울의 둥지로

나를 향해 걸어오는 소리를 듣는다


네가 다가와서 바람결로 서성일 때

삶의 심연, 고독한 세월을 외면하며

외로움의 사다리를 붙잡고 올라온다


거울 속의 창백한 내 얼굴을 보며

나 혼자서 스스로 자신일 수 없었던

소설속의 데미안을 힘겹게 떠올린다


언젠가, 우연히 쓴 커피를 마시던 날,

기다림의 빈 둥지를 조금씩 걸어 나와

서로가 애타는 목마름의 갈증 속에서

우리들은 신비롭게 기적처럼 만났다


마치 운명 같은 바람결로 스며들며

예정된 시간에 필연처럼 만난 까닭에

만남은 우정의 첫 출발로 각인된다


우정의 서곡에, 잠든 목선을 깨어나고

잃었던 해로를 찾아 썰물로 출항하며

우정이란 이름으로 역풍을 다스린다


가슴 속의 작은 섬으로 안주하던 날,

삶의 문이 열리고, 겨울문도 열리며

새벽빛이 밝아오며 마음 문도 열렸다


2.

내 우정의 닫힌 문도 서서히 열렸다

잊으며 잊혀지며 살아온 아픈 세월,

기억난 이름 위로 얼굴이 오버랩된다


이젠 우정의 심오한 의미를 깨달으며

불면의 괴로운 밤을 지새워 가면서

촛불 닮은 우정을, 마음 속에 품는다


동행으로 시작된, 우리의 추운 겨울,

연두빛의 여린 싹을 움트게 하려고

동면의 잠 속에서 긴 뿌리를 내리며

그 우정을 간직하고 설원을 걷는다


따스함을 품고서 횡단하는 광야길,

가슴에 우정의 종소리가 들려오고

깊은 울림이 우정의 무늬를 만든다


우정의 색채들이 조화롭게 어우러져

겹겹이 쌓여가는 모자이크 실루엣,

포근한 잔영이 언 가슴을 녹여준다

실루엣으로 번져든 우정이 눈물겹다


나목들로 가득한 쓸쓸한 계곡에서도

우정의 보랏빛 야생화를 피워내고

소박한 들꽃들이 가슴 밭을 채운다


한 다발의 들꽃과 야생화를 안고

그 많은 새벽 빗줄기를 맞으면서

연어처럼 돌아 올, 누군가를 위하여

우산을 들고 기다리는 강기슭의 나,


강물 닮은 우정을 마음에 담으려고

그리움과 기다림을 혼자 딛고 서서

변함없이 흘러가는 강물을 바라본다


나를 향해 돌아오는 연어들의 귀환,

정녕, 가슴시린 기다림의 세월이었다

우정의 보랏빛 야생화가 피어난 건,

멍들었던 마음 문을 열었기 때문이다


사랑보다 더욱 쓰린 우정속의 애증은

멍든 가슴을 보랏빛으로 채색하였다


나를 떠난 네가, 보고 싶은 날이면

침묵함으로, 더 아픈 보랏빛 야생화가

내 우정의 들꽃으로 외롭게 피어났다


- 난, 너에게 우정으로 남고 싶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