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하의 은빛 수은주
글 / 박 형 서
1.
가을이 훌쩍 떠난 둥지에서
바람에 흔들리던 갈대를 간직한 채
마음을 다스리며 눈을 감는다
아직 남겨진 가을 틈새로
색색의 바람개비가 돌아가고
회전목마도 빙글 빙글 돌고
천천히 무겁게 원을 그리면서
삶의 풍차마저 서서히 돌아간다
왠지 모를 혼돈의 현기증에
고개들어 하늘을 바라보련만
그 하늘도 어지럽게 돌아간다
심한 현기증은 어디서 오는 걸까
창백한 석상처럼 남겨져서
표정조차 잃어버린 타인들에게,
가슴마저 쓰리고 답답해져
어지러움의 이유를 물어본다
단, 한 가지의 질문에
무엇이 두려운지,외면하면서
경계심과 의심의 눈빛으로
그저 돌아서서 어디론가 떠난다
무질서와 어지러움의 의미를
홀로 깨닫기 위하여 바둥거린다
점차 시간이 흐르면서
조금씩 느끼며 알아갈수록
정녕 아무 것도, 알 수 없었다
예민한 느낌만으로 감지된
詩의 序文을 남기는데
무엇인가를 거듭 잃어만가는
안타까운 상실의 아쉬움이
서글픔되어, 내 안으로 스며든다
"영하의 은빛 수은주가
북풍의 문을 열고
바람으로 돌아설 때
거센 폭풍 속의 13월,
내 조국의 산과 강은
이미 우리 것이 아니었다"
몇 줄의 아픈 글을 남기는 순간,
여린 가슴이 먹먹해짐에
울컥하며 울음이 솟아 올라
고여든 눈물을 목으로만 삼킨다
2.
이제야 어지러움의 이유를
속으로 깨달으며 가슴을 때린다
회전하며 돌아가는 세상을
잠재우며 정지시켜야 함에
아무런 힘조차 없는 까닭이다
권력의 힘마저 지니지 못했고
금빛 훈장도 잃어버렸기에
깊은 잠에 빠져있는 그들을
흔들어 깨울 수가 없기 때문이다
내출혈의 통증만을 안은 채
고열의 감기를 앓은 것처럼
자신의 무기력함을 탓하면서
몸을 숨기며 방관자로 남은
비겁했던 나를 스스로 원망하며
오직 햇살만을 기다려야 하는 걸까
인생술집이란 안온한 무풍지대,
그 주홍빛 포장마차에 걸터 앉아
얼마나 많은 술잔을 기울여야
혼돈의 짙은 안개가 걷혀지고
분열과 다툼이 모두 사라진
조국의 山河에 안길 수 있을까
감추기 위하여 마구 구겨버린
여러 장의 원고지를 채워가며
가슴 속에 쌓인 웅어리를
한 편의 詩로 토해낸다
"영상의 초록 수은주가
남풍의 문을 열고
세찬 氣流로 흘러들 때
포근함과 안온함의 13월,
凍土의 대지는 사라지고
살얼음 결짖는 소리가 들리는
따스한 빛 속의 山河는
정녕 우리의 것이었다
해빙의 감동적인 시간이다"
이 한 편의 겨울 詩를
혼돈과 무질서의 마침표,
고난과 시련을 이겨낸
승자들의 힘찬 코러스로
시려오는 언 가슴 속에
새벽의 음표처럼 간직하련만
불만의 압박감이 나를 누른다
民草들이 힘겹게 남긴
긴 침묵의 에필로그를
한 스런 통곡의 계곡에 서서
가슴벽에 문신처럼 새기 듯
원고지에 남길 수 있을까
무거운 정적의 짙은 어둠 속,
두손을 모으며 고개를 숙일 때
"툭" 하는 소리를 내면서
한 방울 눈물이 손등에 떨어졌다
3.
탄식의 안타까운 음성이
가슴 속의 깊은 협곡을 돌아서
숲 속으로 퍼지는 메아라되어
선열들의 외침으로 들려온다
"그토록 고통만 가득 안은 채
잔혹한 피흘림의 역사 속에서
오직 죽음의 희생으로 지켜온
이 조국, 이 민족 아니런가
과연 누가 지킨 나리이더냐
그러기에 지켜라, 지켜가거라
생명바친 선열(先烈)들의 원망이
섬뜩하고 두렵지 않느냐
역사의 심판은 운명을 스쳐지나
부메랑의 필연처럼 다가오기에
내 조국, 내 민족을 끌어안고서
지키거라, 지켜야만 한단다"
선열들의 하얀 넋이 승화되어
달빛 속에 피어난 메밀꽃으로
마음 밭에 흐드러지게 피어나고,
안개자욱한 새벽 강기슭,
보랏빛 여명의 틈새로
내 가슴을 찢으며 들려오는
선열들의 서글픈 외침 소리 앞에
옷깃을 여민 채, 눈물만을 쏟는다
해안가의 평화로운 목선마저
밀물과 썰물에 휩쓸리면서
밤바다를 떠도는 섬처럼
해로마저 잃어버린 난파선으로,
어디론가 끝없이 표류하며
이름모를 무인도의 포구를 향해
기항할 항구의 바닷길을 벗어나
세차게 떠밀려 가고 있었다
찢어지고 갈라지는 민족의 아우성,
몇 잔의 커피를 거듭 마시면서
짙은 비애감 속으로 깊이 빠져든다
- 삶은 새벽빛 고독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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