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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가을이 남긴 그림자] [난, 너에게 사랑으로 남고 싶다] / 박 형 서 시인

박형서 2018. 10. 31. 18:19





이 가을이 남긴 그림자


                                                              

글 / 박 형 서


1.

방향마저 잃은 채, 서성이는 사람들

어지럽게 돌아가는 회전목마 타고서

타원을 맴돌다 힘없이 주저앉은 채

바람개비 하늘을 안타깝게 바라본다


이 가을은 단풍으로 물들어 가는데

쇼 윈도우의 유리벽에 진열된 석상,

하얀 마네킹을 닮은 슬픈 얼굴뿐이다


슬퍼서 눈물겨운 애처로운 표정이다

모두 아픈 사연을 안고 돌아 앉은 채

이 가을이 그려 놓은 그림자 속에서

나보다 더 외로워, 침묵하는 타인들


그래서 포옹할 추운 사람들 이련만,

정녕, 내 삶이 힘겹고 무거운 까닭에

 이기적인 삶을 살며 마음 문을 닫고  

얼음처럼 차가운 세월만을 살아왔다


누군가를 미워하며 살아온 날이어서

서글픈 마음에 시린 가슴을 때리며

이제야 후회하며 증오심을 버린다


그 많은 세월의 뒤안길에 안주하며

애증의 마음조차 다스리지 못한 채

질투의 굵은 줄로 묶은 그 사람들,

아픔의 신음소리가, 선명히 들려온다


서로가 등을 돌려 타인으로 남겨진

고독하고 가슴쓰린 이유가 존재함에

색색의 가면을 벗겨내는 아픔 속에서

 스스로 타인으로 남은 허전함을 안고

겸손의 의미를 조금씩 헤아려간다


2.

가을이 훌쩍 내 곁을 떠나가는 소리에

이별의 순간들이 아쉽게 다가오고

이 가을 밤은 온통 회개로 가득하다


아쉬움의 세미한 그 음성을 들으면서

사랑 할 시간들이 그렇게 많지 않음을

내 세월을 바라보며 비로소 느낀 걸까


외면했던 얼굴들을 따뜻하게 껴안는다

나보다 더 추워서 떨고 있던 타인이

빈 가지의 나목처럼 보이는 까닭에

체온으로 녹여주는, 가을이 정겹다


이 가을이 남겨놓은 깨달음 앞에서

마음을 짓누르던 미움을 내려놓고

가을이 담겨있는 쓴 커피를 마시며

떠올리는 에스프레소, 한 잔의 의미


가슴에 스며든 갈빛 커피를 음미하며

모두 내어주고 빈 마음으로 떠나는

가을의 독백만을 가슴에 간직함에,


기도를 하면서도 용서하지 못한

고통스런 인연의 쓴물을 거두기 위해

우정과 사랑의 빗나간 미움을

새를 가둔 새장처럼 숲속에 버린다


미워하다 죽어간 살리에르를 생각하며

혈기의 마음을 비워낸 나를 바라본다


참으로 어리석은 후회의 시간이었다

안타까운 미움 줄을 끊어버리면서

참회의 기도를 이어가고 싶으련만

가을은 그림자만 남기고 떠나려한다

가을아, 내 곁에 조금 더 머물러 주렴


 서정으로 드리워진 노을빛 실루엣,

흐린 잔영 속에, 헤어짐이 자리할 때

독백으로 가득한 가을 편지 한 장,

찬 바람에 흔들리며 울고 있었다


이 가을이 집필한 참회록을 안고

바람결에 밀려오는 낙엽을 모으며
나목이 남겨놓은 그림자를 바라본다


클라라가 작곡하고 슈만이 연주한

노벨레텐 B단조가 가슴벽을 때렸다 


- 난, 너에게 사랑으로 남고 싶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