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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형서시인 / [고난 속의 초록 비상구] [삶은 새벽빛 고독이었다]

박형서 2017. 12. 9. 12:56





 글 / 박 형 서


고난 속의 초록 비상구



1.

높낮이를 반복하는 삶의 포물선이

순간적인 평안함의 무풍지대를 지나

영하의 은빛 수은주가 떨어져 내리듯

갑자기 불어오는 비바람에 흔들리며

하강의 곡선을 따라 미끄러져 내린다


평온함 속으로 세찬 바람이 불어오고

내 유리벽의 온실마저 무너져 내린다

따스한 햇살과 훈풍은 바람 속에 숨고

서재를 밝힌 촛불마저 힘없이 꺼지면서

잔잔했던 가슴바다로 광풍이 밀려온다


아무런 예고 없이 밀려온 고난의 물결,

회오리바람은 너풀대는 파도를 만들어

침묵하는 바다의 가슴 벽에 부딪히고

시련의 빗줄기마저 빈 가슴을 때렸다


그토록 따스한 평온함이 무너져 내리고

가슴시린 찬바람이 전신을 휘감던 날,

무풍지대의 달빛을 가슴속에 간직하며

난, 석상처럼 하얗게 얼어붙고 있었다


위선과 연기의 검은 안경을 외면하며

나태함과 교만함의 두꺼운 옷을 벗고

투명한 얼음 속으로 발걸음을 옮길 때,

살얼음 깨어지는 그 소리가 들렸지만

내 마음은 고통의 빙점 속에 갇혀졌다


내 속에서 내가 추워, 온 몸을 떨던 날

벌거벗은 알몸의 낮은 나를 바라보며

비로소 멀리했던 바이블을 안으면서

통곡의 아픈 기도를 스스로 예비한다


2.

고난을 잠재우고 싶은 그 마음이련만

추락하여 부러진 두 날개만 퍼득이고

내 마음의 들녘을 하얗게 물들이는

체념의 백기들이 안타깝게 펄럭인다


삶이 허락한 평안함의 작은 둥지에서

상처난 마음을 그 분께 치유 받으련만

고통의 계곡으로 굴러 떨어진 이 순간,

고개를 숙인 채 저지른 죄악을 회개하며

후회로 가득한 묵상의 기도만을 이어간다


삶이 선물한 고난을 축복으로 받으면서

오직 주님께 간구하는 불면의 첫 새벽,


깨어지고 아려오는, 찢기운 가슴 속으로

그 많은 기도의 눈물이 샘물처럼 고여들고

애태우던 기도의 맑은 응답이 내려질 때

깨달음의 빛들이 내 안으로 스며들었다


암울함의 어둠을 서서히 밝혀주는 빛,  

고통 속의 신비스런 비밀을 알았기에

평안과 고통이 교차하는 그래프를 보며

아픈 고난은 오히려 삶의 축복이라는

심오한 의미를 가슴으로 깊이 깨닫는다


짙은 어둠을 밝히는 여명의 그 틈새로

바이블에 숨겨진 음성이 새벽을 깨우고

구원처럼 다가오는 빛이 나를 일으킨다


아득하게 멀리 떨어진 세월 자락 끝에서

하얀 속죄의 계단을, 두 무릎으로 오르던

마틴 루터의 눈물겨운 참회의 그 모습이

순종 속의 안타까운 환상으로 다가온다


3.

그를 닮고 싶은 염원에 두 눈을 감는다

마틴 루터의 뒤를 따라, 계단 앞에 서서

남겨진 죄악의 옷들을 미련없이 벗은 채

고난을 딛고 일어서는 나를 만나려고

믿음 속에 감추어진 돌계단을 바라본다


속죄의 계단에 엎드려, 눈물을 쏟아낼 때 

짙은 어둠속에서 탈출의 비상구가 다가왔다

고난 속의 초록 비상구가 새싹처럼 돋아나고

신비롭고 은혜로운 음성이 레마로 들려왔다


 “내가 네 기도를 들었고, 눈물을 보았노라”

그 낮은 목소리가, 멍든 가슴을 찢고 들어와

포근하고 안온한 위로의 손길만을 전함에

그 분의 강한 섭리하심에 무릎을 꿇는다


상한 갈대를 꺾지 않으시는 속깊은 그 사랑,

따뜻한 사랑만을 차가운 가슴에 간직한 채

방황의 발걸음을 돌리며 주님께로 향하건만

다시 돌아갈 길엔 낙엽만 수북이 쌓여있다


홀로 외로운 광야의 하얀 설원을 걸어간다

그 분의 정겨운 가슴 속에 안기우고 싶어서

믿음의 설국열차에 온 몸과 마음을 실은 채

설원의 기차는 철로 위를 세차게 달렸다


 끈적이는 고난의 깊은 늪을 서서히 빠져나와

또 다른 생명의 이름으로, 그 분께 향하는데

새벽빛 여명의 설원 숲에 눈꽃들이 피어나고

순백의 함박눈이 빈 나목을 가득히 덮는다


갈빛 잎새마저 떠나간, 한 그루의 나목되어

그 많은 빗줄기를 그토록 말없이 맞으련만

 정녕 상처로 남는 고통 속의 서글픔이 

승화된 고난의 나이테로 새기는 순간임에

절망의 미학이란 추상적인 명제를 껴안으며

가슴벽, 원고지에 삶의 짙은 詩想을 남긴다


밤바다를 밝혀가는 등대불의 눈빛처럼

거듭남의 초록 비상구가 지친 나를 인도한다

그 분께서 밤새도록 등불 들고 밝히시며

한 영혼의 구원을 위해 만드신 하얀 길,


사랑으로 다가오는 감동의 전율을 느끼며

13월의 길을 따라, 순종하며 걸어갈 때

초록색의 탈출구는 빨간빛으로 변해갔다


  - 삶은 새벽빛 고독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