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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형서시인 / [포장마차 그리고 인생술집] [삶은 새벽빛 고독이었다]

박형서 2017. 11. 13. 10:11




포장마차 그리고 인생술집


글 / 박 형 서


1.

내 곁을 스치고 지나간

그 많은 세월의 흐름 속에는

힘겹고 지친 삶을 위로하는

포근하고 따스한 인생술집이

주홍빛 포장마차란 이름으로

삶의 무풍지대처럼 남아 있었다


가을이 떠나가는 이별의 시간,

서글픈 헤어짐의 날이면

늦가을의 둥지를 닮은

포장마차, 빈 의자에 앉아서

목마른 갈증을 달래기 위해

가을 달빛이 가득 담긴 듯한

그 소주잔을 연달아 들이켰다


짙은 어둠의 터널의 지나

새벽이 밝아오는 여명의 시간까지

카키색으로 물든 카프카와

니힐을 간직한 니체에 대해

심오한 사상의 심연까지 파고들어

한 마리 은빛 심해어로

초록 수초 사이를 유영하며

소주잔과 대화하던 인생 술집,

그 곳은 외진 갈대숲의 둥지였다


몇 병의 소주를 비웠을 때

백열등이 희미하게 비추이는

허름한 포장마차의 실루엣 속에

빛바랜 원고지의 흐릿한 영상이

시인의 詩想으로 오버랩 된다


기다림에 익숙해진 그 날부터

홀로 포장마차에 외롭게 앉아

오랜 시간동안, 술병을 비워가도

외롭지만 전혀 외롭지 않은 것은

밤새도록 술잔 속의 나와 대화하며

내가 나를 만나는 그 시간들이

너무 소중하고 정겨웠던 까닭이다


2.

허름한 포장마차의 지붕에서

가을 빗방울 소리가 흑백 건반의

카단타 선율로 낮게 들려오고

깊어지는 밤의 끝자락까지,


우정과 사랑에 관한 독백을

구겨진 종이 위에 남기며

문학과 종교를 깊게 생각하던

주홍빛 포장마차의 둥지가

내 삶의 인생 술집으로 간직됨은

젊은 날의 불꽃 닮은 날들이

너무나 뜨거웠기 때문일까


갑자기 불어오는 초겨울 바람.

영하의 은빛 수은주가 하강하며

가슴 시린 기류를 몰고 올 때,

잠시 머물다 떠나는 인생 술집은

새벽 문을 열고 떠나려는 나에게

카바이트 불빛으로 위로하며

밤바다의 외진 섬에 자리한

이름 모를 무풍지대로 남게한다


고독함과 쓸쓸함의 가을이면

인생술집이란 친근한 이름의

흑백사진 속의 포장마차는

자신과의 부딪힘에 아파하는

내면 속의 깊은 나에게 다가와서

문학의 좁은 길을 걷게하고

허무의 늪에 빠져 버린 나에게

두 손을 내밀어 끌어 올리며

니체의 허무에서 탈출하는

초록색 비상구를 알려주었다


아련히 떠오르는 술잔의 기억들,

술값이 모자랄 것 같아서

주머니에 양 손을 넣은 채

몇 개 남은 동전을 헤아리며

남겨진 소주를 아끼며 마셨던

학창시절, 주홍빛 포장마차가

그리운 인생술집으로 다가온다


지금도 혼자 밤길을 걷다가

오랜 친구처럼 가슴에 남은

따스한 포장마차를 우연히 만나면

그 앞에서 잠시 발걸음을 멈추고

빈 가지로 남은 삶의 나목처럼

차가운 바람결에 두 손을 흔들며

지난 기억들을 조금씩 되살린다


3.

평행선의 끝없는 철로 위를

종착역인 늦가을 바다를 향해

혼자서 숨차게 달리는 밤기차가

잠시 거친 숨을 고르며 머무는

쓸쓸한 간이역으로 남았던 그 곳.

때론 상, 하행선의 열차가 교차하는

내 안의 인생술집으로 자리했다


잠시 정지한 기차에서 급히 내려

수은등의 나무 벤치에 앉아서

하늘의 수많은 별들을 헤아리며

스쳐가는 가을처럼 짧게 머물던

이름 모를 시골의 한적한 그 기차역,

인생술집의 포장마차가 떠오른다


가슴속에 포개진 모든 기억들이

인생술집이란 흐릿한 영상의

낡은 필름으로 소중하게 간직되어

지친 삶의 여정을 이어가는 나에게

13월의 새 하얀 여백의 스크린을

따뜻한 환상으로 가득 채운다


그 많은 세월이 훌쩍 흘러갔으련만,

먼 수평선의 깜박이는 불빛처럼

인생술집이란 이름의 포장마차는

아직 내 안의 어둠을 다스리며

인생 쉼터의 낭만을 간직한 채

삶의 짙은 기억의 흔적들로 남았다


서재에 가득 쌓인 원고지를 안고

이젠 인생의 반환점을 돌면서

남겨진 삶을 가슴 속에 품은 채

인적 끊긴 늦가을의 간이역 대합실,

역무원마저 잠든 기차역에서

인생술집의 포장마차로 동행하려고

나를 기다릴, 한 詩人에게로 향한다


인생술집의 포근한 포장마차는

더욱 신비로운 문학의 의미를 전하며

마음의 정원에 감성의 꽃을 피웠고

가슴의 대지에 문학의 뿌리를 내려서

그 뿌리로 맑은 수액을 빨아올리게

햇살과 비, 삶의 열정을 안겨주었다


그리고 내 안의 나로 하여금

가슴으로 삶을 바라볼 수 있는

속 깊은 심미안을 지니게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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