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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형서시인 / [한 詩人의 가을편지] [삶은 노을빛 외로움이었다]

박형서 2017. 10. 6. 12:54



한 詩人의 가을편지


글 / 박 형 서


1.

참으로 많은 세월이 흘렀지만

한 詩人을 잊지 않고 기억해주시는

이름모를 많은 독자분들이

내 곁에 존재하고 있었던 까닭에

겨우 한 권의 詩集을 탈고하며

외로운 詩人의 가을 편지를

그 누군가에게 전해봅니다


아무런 예고조차 없이

고난의 역풍이 휘몰아치던 날,

내 의지와는 전혀 상관 없이

삶의 포물선 아래로 떨어져내려

갑자기 빠져든 절망의 상황 속에서


그 많은 고통과 시련의 빗줄기를

숲 속의 한 그루 나무처럼

한 마디 불평 없는 침묵만으로 

온 몸으로 밤새도록  맞으며,


세월의 무게에 가슴이 짓눌려

문학에 대한 열정과 애정,

가슴 속의 심오한 詩想들마저도

모두 남김없이 고갈되었건만,


고난을 딛고 일어선 그 날,

나에게 깊은 상처만을 남겨 준

고통과 좌절의 아픔들이

짙은 어둠의 틈새를 빠져나와

한 줄기 새벽빛 여명처럼

감동의 빛으로 다가왔습니다


그 빛을 가득 꽃처럼 안고

또 다른 생명을 잉태할 때

목마름과 갈증 속의 詩想들은

생명을 지닌, 초록의 새싹으로

두꺼운 대지를 뚫고 나와

사랑의 詩를 가슴 밭에 

새 싹으로 돋아나게 합니다


숱한 고난의 세월과 함께

아픈 사랑도 소리없이 다가와서

투명한 흐름으로 잠시 머물다

스쳐가는 바람처럼 떠나갑니다


대 숲에서 들려오는 바람소리,

아직도 그 소리를 기억함은

지치고 고단한 시간 속의

사랑이 떠오르는 까닭입니다


2.

사랑은 투명한 바람으로 다가와

조용히 사라지는 환상을 닮았지만

그래도 따뜻한 그 사랑이

이 세상에 존재할 수 있기에

일상의 힘겹고 지친 삶마저도

사랑의 미학이란 이름으로

 아름답게 승화된 것입니다


허무할 만큼 가슴시리고 

서글픔으로 가득한 기다림이

진정 깊은 사랑으로 남습니다

오직 한 사람만을 사랑하면서도

홀로 사랑 밖을 서성이는 건

우리에게 간직된 소중한 사랑이

가슴 시리도록 안타깝고

눈물겨운 닭입니다


가슴 쓰리지 않고, 아프지 않고

마음시린 보고픔이 없다면

정녕 그것은 사랑이 아닙니다

허무하면 할수록 허무하지 않기에

사랑 밖의 외로움이 커지면

커질수록 외롭지 않은 법,

그래서 서글프지 않습니다


가을의 찬바람이 불어오는 날,

암막의 두터운 커튼을 열어젖히고

무심코 흐릿한 창문을 통하여

가슴 밖의 가을 숲을 바라봅니다


새벽 강기슭, 물안개처럼

잔잔하게 다가오는 실루엣,

사랑 밖의 빈 숲 속에서

한 그루 나목처럼 떨면서

한 사람이 쓸쓸하게 서 있습니다

그 사람은 바로 당신입니다

그리고 내 자신입니다


누군가를 미치게

토록 사랑하면서도

홀로 사랑 밖에 서 있는 건,

언젠가 다가 헤어짐을

미리 예감했기 때문입니다


수신인이 독자들인 까닭에

밤새도록 써내려간 가을 편지를

빨간 우체통에 한 장씩 넣으련만

편지를 받을,수신인의 주소는

전혀 쓰여있질 않습니다


다시 나에게 돌아올 편지를

정성들여 우체통에 넣고

고개를 숙인 채, 돌아오는 길,


왠지 나를 떠난 타인들이

무척 보고 싶어 지련만

아련한 그리움 속에서

외로운 가을 야생화, 한 송이가

선명한 모습으로 떠오르며

고독의 심연, 깊은 곳에서

나를 향해 다가옵니다


- 삶은 노을빛 외로움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