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사랑이 떠나 갈때, 우정이 다가왔다 글 / 시인 박 형 서 미련없이 떠나는 뒷 모습을 바라보며 한 사람을 지워 버린다 모든 것을 다바쳐 사랑한 사람인데 간이역의 기차처럼, 멀리 떠나간다 함께 날던 하늘마저 회색빛에 물들고 상처입은 두 날개만 꿈틀거린다 나를 위해 자신마저 버리겠다던 너의 지난 약속들이 무너져 내린다 언젠가는 바람처럼 떠날 줄 알면서도 내 마음을 바쳐서 불꽃으로 타오른 건 너 역시 나를 향한 불꽃으로 남았기에... 이별의 그 순간이 서서히 다가오는 서글픈 사랑임을, 가슴으로 느끼면서 너를 위해 나를 버릴 수 있었던 건 생명보다 더 소중한 사랑 때문이었다 후회의 아픔 속에 온 몸을 떨었지만 아쉬움을 느끼기엔 때 늦은 시간이다 아름다운 추억으로 가슴벽에 새길 뿐 지나간 날들을 세월 속에 간직한다 얼만큼의 독한 술을 마셔야만 하는가 길을 걷다 힘없이 가로수에 기댄다 심호흡을 하면서 겨우 몸을 추스린다 그녀가 떠나간 어둠 속의 골목 길을 허탈스런 미소로 쓸쓸히 바라본다 혼자 남은 처연함의 외로운 시간들... 어디선가 폭풍처럼 바람이 불어와 가로등이 흔들리고, 나도 흔들리고 나무들도 휘청이며 잎새가 떨어진다 멀리서 약국의 빨간 간판이 보인다 밤 하늘을 지키는 작은 십자가처럼 안온하게 다가와, 지친 나를 위로한다 떠나간 슬픔에, 나마저 지킬 수 없는 연약한 내 자신이 안타깝게 바라보며 깊은 잠을 자고 싶은 유혹에 빠져들 때 난, 비틀거리며 약국으로 향하고 있었다 달콤할 것 같은 노란 신경안정제를 달콤한 캔디처럼 혀로 녹여 먹으려다 손에 든 안정제를 멀리 던져버린다 지금 나는 어디로 가야만 하는 걸까 그녀의 마지막 목소리가 듣고 싶어서 공중전화 수화기를 소중히 움켜쥔다 무슨 말을 어떻게 해야 하는 건가 뜨거운 눈물을 목으로 삼키련만 볼을 타고 주르르 눈물이 흐른다 정겹고 아름다운 순간들 이었다 끊임없이 불꽃으로 타오른 그 사랑... 오랜 세월 우울함에 무척 힘들겠지만 그 사랑은 빛이 되어 나를 밝히겠지 다이얼을 돌리는 가느다란 손가락이 경련을 일으키며, 미세하게 떨린다 그녀에게 망설이며 전화를 걸었건만 남자의 음성이 저음으로 들려온다 너무 많이 들은 듯한 친근한 목소리 그것은 친구의 정겨운 음성이었다 여보세요...여보세요...나야...나... 사랑으로 잊었던 그 우정을 떠올리며 울음섞인 목소리로 친구를 불러본다 정녕 그녀의 목소리를 듣고 싶었는데 친구의 음성이 구원처럼 들려왔다 친구의 목소리가 가슴속을 파고든다 왜 그렇게 따사롭게 들려오는 걸까 사랑과 우정의 아주 좁은 틈새에서 우정의 따스함이 빛으로 새어나와 마음에 불어오는 찬바람을 다스렸다 젊은날의 방황과 아픔의 긴 여정은 사랑과 우정을 위한 협주곡 이런가 아니면 사랑과 우정의 이중주 일까 우정이 떠나갈 때, 사랑이 다가오 듯 사랑이 떠나갈 때, 우정이 다가왔다 그리고 세월은 바람처럼 흘러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