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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형서시인 [가을 속의 돌계단]

박형서 2015. 8. 20. 16:24

 

 

 

가을 속의 돌계단

 

글 / 박 형 서

 

늦가을의 숲 속 길을 홀로 걸어가며

스쳐 지난 세월의 기억들을 떠 올린다

기도하며 속죄 할, 회개의 시간이다

왜 그렇게 이기적인 삶만을 살았을까

미움의 눈빛으로 타인들을 바라보며

시기심과 질투로 기어오른 아득한 곳,

광대들의 곡예만을 어설프게 흉내내며

스스로 쌓아올린 교만 속의 높은 탑

삶의 외줄 잡고서, 이곳까지 올랐지만

나를 닮은 사람들이 슬픈 춤을 이어갈 뿐

가을 속의 돌계단에 긴 어둠이 내리고

아픈 눈물 쏟아야 할, 속죄가 남아있다

더 높은 하늘 끝으로 날아오르고 싶어

힘 잃은 두 날개를 겨우 추스르며

또 한 번의 화려한 비상을 꿈꾸지만

타인들을 딛고 오른 죄악이 두려워

하늘 잃은 새처럼 날개를 접는다

겨울로 향하는 늦가을의 문턱에서

그 분께 지난 삶의 용서를 간구하며

깊은 상처 남겨준 타인들을 껴안는다

비에 젖은 나무와 잎새들을 보면서

자아를 내려놓고, 내 삶을 비우려고

하얀 갈대처럼 스스로 고개를 숙인다

겨울을 살아야 할, 그런 이유 때문이다

문득 혈기와 탐욕의 세월들을 돌아본다

허무 속의 안타까운 바둥거림 이었고

허상만을 쫓아가던 아픈 세월이었다

두 손에 잡히는 건, 아무 것도 없는데

안개 속의 탑들은 환상처럼 지워지고

비로소 나타나는 돌계단을 응시한다

내 가슴을 찢어내는 깨달음 속으로

속죄의 돌계단이 길게 펼쳐지면서

가을 속의 돌계단이 레마로 다가왔다

아! 왜 이렇게 숨 가쁘게 살아 왔을까

무엇을 잃었고, 무엇을 얻은 건가

많은 것을 잃었지만 꿈마저 얻지 못한

빈 손, 빈 마음, 빈 가슴이 저려오고

가슴시린 허전함에 울고 싶어진다

돌아보니 온통 후회의 삶뿐이다

동면을 위하여 돌계단이 있는 걸까

하얀 설원의 겨울로 향하는 그 길은

참회의 기도로 무릎 꿇고 올라야 할

가을 속에 숨겨진 돌계단 이었다

하얀뻐가 보이는 통증을 이겨내며

오직 무릎으로 돌계단을 올라가던

마틴 루터의 속죄가 가슴을 때린다

 

나를 지켜보는 그 누군가에 의해

내 모습을 투시하며 녹화되는 필름들은

스크린의 영상으로 끊임없이 돌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