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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아프니까 가을이다
글 / 시인 박형서
어디선가 그리운 사람에게
편지가 올 것 같은 예감이 든다
그래서 가을일까
스쳐 지난 세월에게
한 편의 가을詩를 전하고 싶다
정녕 가을이다
어디론가 떠나는 기차
빈 의자의 외로운 간이역이 생각난다
쓸쓸한 가을이다
잊혀졌던 그 사람
그 사랑, 그 얼굴이 떠 오른다
가을이기 때문일까
그 언젠가, 찾았던 카페에 앉아
짙은 향의 커피를 가슴으로 마신다
그러기에 가을이다
술에 취해 그토록 방황하던
가슴시린 젊은 날이 기억난다
아픈 가을이다
누군가를 용서하고픈 생각에
고개를 떨군 채, 한참을 생각한다
가을이기 때문이다
포장마차 백열등과 가을 빗소리가
선명한 환상으로 되살아 난다
외로운 가을이다
카키색 사파리, 커다란 주머니의
라이너 마리아 릴케
빛 바랜 시집이 생각난다
정겨운 가을이다
니체 전집을 헌 책방에 팔고서
하얀 대낮에 홀로 술 마시던 기억들
그 가을이 그립다
오직 법서에만 파묻혀서
낮과 밤의 흐름을 잊던, 정지된 시간들
그 가을이 생각난다
가을이 진정 가을로 남은 것은
가을 닮은 지난 가을들이
삶의 하얀 캔버스에
가을스케치로 남은 까닭이다
아쉬운 가을이다
빨간 우체통이 그리워지는
긴 기다림의 가을이다
왠지 가슴이 아프고 쓰리다
그래, 아프니까 가을이다
그립고 쓰리니까 가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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