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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형서시인 /[기찻길 옆, 외진 주점][삶은 새벽빛 고독이었다]

박형서 2019. 7. 18. 10:41



[기찻길 옆, 외진 주점]


[글 / 박 형 서]


8월의 크리스마스를 떠올리며

여름 밤의 가을 주점으로 향한다

삶 속엔 빈 손, 빈 가슴, 빈 마음만

허전한 갈빛 잎새처럼 남았을 뿐

어디선가 서서히 다가오는 가을이

멀리서 나를 향해 흘러오고 있다


혼돈의 어지러운 시간을 빠져나와

혼자 고통의 무풍지대에 머물 듯

여름 속의 안온한 가을을 만난다


세월의 흐름은 너무나 아쉬운데

정해진 시간을 뛰어 넘으면서

짧아진 계절의 좁아진 틈새를 지나

나를 위해 오래 전에 예비된 섬,

미지의 13월을 향하여 걸었다


가을의 숱한 기억들이 간직된

기차길 옆, 그 주점이 그리워진다

가을이 낙엽으로 바람에 날리는

거울같은, 작은 유리 창문 밖으로

기차가 지나 선술집을 떠올란


몇 잔의 소주를 혼자서 들이키

하얀 테라스의 유리 창문 밖으로

가을 밤기차가 달리던 아련한 기억,

숨겨진 기적소리도 작게 들려왔


밤이 깊어질수록 고개를 숙였지만

노란 달빛이 담긴 투명한 유리 술잔,

그 달빛을 마시던 낭만의 가을 밤이

한 줄기 바람으로 내 곁을 스쳐간다


들꽃향이 가득한 가을빛 술잔

혼자서 들꽃을 마시던 가을빛 애상,

그 술잔 속에 담겨진 쓸쓸함에

물끄러미 가을 창 밖을 응시하면

가을 열차가 숨차게 달려가곤 했었다


몇 번의 밤기차가 지나간 것일

눈물로 채워진 술잔을 손에든 채

벽에 걸린 카프카의 초상화를 보면서

가을 기차가 급히 지나가기 전에

서글픔의 술잔을 가슴으로 마신다


정겨운 가을, 그 심연의 선술집에서

살아있음에 대한 자축의 술잔을 들며

그 많은 가을 추억들과 대화를 한다


오늘 밤도 끊임없이 마음창문 밖으로

세월의 기차는 잔잔한 흔적을 남기며

사랑과 우정의 철로 위를 달리면서

바다의 종착역으로 향하고 있었다


가을비에 메마른 마음을 적시며

 마지막 지나갈 기차의 아쉬움에

가을 주점을 나와, 강기슭에 서있다


여명의 새벽까지 강가에 머물며

새벽 강의 물안개가 걷히는 순간까지

미완으로 남은 삶, 손으로 부여잡고

가을닮은 나무처럼 긴 뿌리를 내린


밤기차가 지나는 깊은 가을 주점,

가을비가 내리면 다시 찾을 것이다

달빛과 들꽃, 눈물의 술잔을 기억하며

창 밖으로 지나가는 기차가 그리워

발걸음은 선술집으로 거듭 향하리라


- 삶은 새벽빛 고독이었다-